총공회와 기관들

백영희 목사님은 1959년 고신에서 제명 되고 1966년에 훗날의 교회를 위해 ‘총공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1989년 그의 사후 100개의 전국 총공회 교회는 백영희 생전에 대한 평가와 이후 방향을 두고 크게 5가지 노선을 제시합니다. 그 5가지 노선은 총공회 내의 5대 공회로 그 모습을 드러 냈고 이 곳은 각 공회들과 관련 기관을 모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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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회와 기관들 게시판

이동훈 집사님 별세 - 연구소를 후원한 유일의 서부교인

작성자
연구소
작성일
2019.11.11
이름 : 이동훈 집사님 (61세)
별세 : 2019.11.10.
장례 : 2019.11.12. (발인, 하관의 세부 내용은 추후 '제목'에 표시)
장소 : 부산 고신대병원 장례식장 101호
장지 : 김해 서부교회 묘소

가족
부인 : 조미애 집사님
자녀 : 1남 이한길 (28세), 이선종 (25세)


(소개)
이동훈 집사님은 1980년 부산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신앙의 바른 길을 찾아 서부교회를 출석했고, 백 목사님 사후 30년이 지나도록 변치 않고 이 노선에 전력하면서 연구소를 통해 이 노선이 잘 전해 지는 일에 시간과 경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서부교회 전체 교인 중에서 연구소의 최대 후원자였습니다.

최근에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는 자녀의 사유재산'이라는 사건을 두고 '신앙고백'을 법원에 확인서로 제출하며 자신의 신앙과 공회에 대한 평가를 남겼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신앙의 고백은 쉬우나 막상 공회와 서부교인을 향해 고난이 닥치자 교인 중에서는 이동훈 집사님 1명만 '백영희 설교는 자녀 것이 아니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한 마디로 이 집사님은 부공3의 연구소와 동지가 되었습니다.

이동훈 집사님을 알 수 있는 2017년의 발표문을 첨부합니다.






<사실확인서>
제출 : 부산지방법원, 2017년 10월 27일

이름: 이동훈 (59세)
주소: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3가 시약로
소속: 부산 서부교회 집사

본인은 1980년 부산시청 수도국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같은 부서의 직원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서부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교회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도를 받고 흔쾌히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던 교회와 목사님이 바로 이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학창시절에 사람이 생명을 바쳐 투자 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길이 이 신앙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늘까지 37년간 서부교회 교인으로 살면서 백영희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제 생애를 바른 신앙양심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백 목사님의 제자(총공회 교인은 주일학생부터 장년반까지 모두 백 목사님의 제자입니다.)로서 그분의 신앙노정을 설교록과 설교음성을 통해 듣고 연구하며 나도 스승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떤 현실에도 감사와 기쁨으로 살고 있습니다. 서부교회와 총공회 교인은 대부분은 백 목사님의 설교의 감화와 지도력에 큰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출석하고 있고 백 목사님의 교훈과 지도와 교회운영이 성경에 근거하여 워낙 엄격하기 때문에 보통 교인들은 다니기가 어려워 견디기 힘든 분들은 타교회로 이동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백 목사님의 교훈에 따라서 서부교회 출신의 아내를 배필로 삼았으며 아내는 서부교회 모태신앙이며 장인어른은 백 목사님의 고향인 경남 거창군 개명 마을 출신으로 평생을 백 목사님을 따라 서부교인으로 교회를 위해 충성 하신분입니다. 백목사님은 제 장모님의 이름을 개명하여 주실 정도로 처가와는 각별한 사이 였습니다. 제 개적으로는 8월 거창집회 참석 시에 백 목사님을 직접 뵙고 ‘한국에는 기독교가 늦게 들어왔는데 그전에 수천 년 동안 안 믿은 분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고 질문을 드리니 ‘안 믿었으면 다 지옥 가지’ 하는 대답을 들은 사례가 설교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소속한 부산서부교회는 총공회 교단 내에서 ‘부산공회(2)’로 분류 되며, 피고 이영인 목사가 속한 ‘부산공회(3)’과는 소속도 다르며 실질적으로 적대적 분위기입니다. 그렇지만 다음 사실만은 총공회의 과거 역사이므로 수천번의 설교를 듣고 연구하고 있는 저로서는 양심에 따라 확실히 증언할 수 있습니다.



1. 백영희 목사님은 1989년 8월 27일에 임종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그 해 몇 년 전부터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은 세계 제일이다.’ ‘세계 교회가 모르는 것을 나를 통해 주셨으니 우리는 이것을 전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타 교회를 다녀 봤기 때문에 저는 백 목사님의 이런 뜻을 실감했고 또 교계적으로 서부교회와 총공회 교단은 이단이라고 비판을 늘 받았기 때문에 모든 교인이 잘 아는 내용입니다. 타 교단은 우리를 이단으로 비판하고, 우리는 세계 교회가 알아야 할 천금 같은 교리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2. 당시 총공회 교단에는 백영희 목사님 사후에 변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짐작되었기 때문에 설교말씀 중에 ‘내가 죽고 나면 총공회가 쪼개질 것이다’, ‘내가 죽어도 계속 이대로 갈 사람은 3분의 1정도 이고 나머지는 변심할 것이다’라고 언급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퇴임 후 친인척 비리 사건이 터졌는데 구체적으로 이를 언급하며 백 목사님이 죽고 나면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 재산 문제로 총공회와 교회에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니 이를 막기 위해서 조처를 한다고 교회의 연차 총회에서 ‘연구소는 내 것이 아니고 내 자식 것도 아니다.’고 약속을 하고, ‘백영희목회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3. 백영희 목사님은 총공회 교단과 서부교회가 백영희 설교를 잘 전하도록 자신과 자녀의 권리가 없음을 밝혔고 그런 취지 때문에 연구소를 독립 시켰습니다. 또 그런 일이 생길 때 최종적으로 그 설교를 전하기 위해 신풍에 목회연구소를 백 목사님 생전에 설립을 했습니다. 저는 서부교회 교인으로서 서부교회 바로 옆에 붙은 부산의 목회연구소에서 책을 구입하고 있었지만 1993년부터는 어떤 책도 살 수가 없고 또 항상 문을 닫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편집실 직원부터 목회연구소 연구부장인 신풍의 연구소에 연락해서 지금까지 백 목사님의 설교와 서적 등 관련 된 모든 자료를 구하여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4. 백영희 목사님께서 편집실을 독립시킨 것은 이와 같이 본인 사후에 교훈 전파 방해가 극심할 것을 예상하셨던 것이고, 그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직접 언급하셨습니다. 그 전에는 교훈 전파를 위해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에 힘쓰셨습니다. 특히 저희 서부교회에서는 저의 동료인 주일학교 반사 뿐 아니라 수위실 직원, 엠프기사까지 4~50명이 목회를 나가 교회를 개척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길러진 목사들이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을 전달하지 않고 자기 사유 교회로 만들고 총공회 탈퇴까지 선언하자, ‘교회 개척은 쓸모가 없고 오로지 교훈 전파만이 희망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백 목사님의 1대 제자이자 해외 유학까지 갔다 온 사직동교회 송용조 목사님의 탈퇴는 매우 큰 충격이셨습니다. 한편 백 목사님은 자신의 교훈을 이어갈 서부교회 후계자를 선정하기 위해 애쓰셨고 서영준 목사님을 후계자로 공식 선언까지 하셨으나 서 목사님이 1987년에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는 ‘이제 서부교회도 희망 없고 누가 도둑질해 갈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서부교회 건물에 있던 편집실을 거액의 돈을 들이면서까지 독립을 시키신 것입니다. 백 목사님 사후 총공회와 서부교회가 30년간 분열된 것을 보면 아주 정확한 예언이셨습니다.

5. 백영희 목사님은 평생 ‘이 설교는 내 설교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설교로 어떤 명예나 물질도 취하면 안 되고 그러면 도둑질이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유급전도사로 출발할 때 이야기를 하시며 자신의 재산은 다 팔아 없앴고 자식에게 줄 재산은 한 푼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편집실에서 설교록을 처음 출간하게 되면서는 ‘이 설교는 내 설교가 아니다, 주님의 것이다, 나는 여기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수차례 말씀하시며, 본인의 청렴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또 ‘이 설교는 내 설교가 아니라 주님의 설교다. 이 설교를 전하는 것은 내 명예나 물질을 위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나를 위한 것이었으면 절대 설교록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셨으며, 편집실을 독립시킬 때도 ‘이 편집실과 설교록이 내 개인 것이 아니고 내 혈육 것도 아니다.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 독립시키는 것이다. 또 내가 죽고 나면 서부교회와 총공회를 누가 가져갈 것인데 편집실만은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6. 한편으로는 교훈 전파를 막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다 하면서 평생 교권을 없애는 데에 주력하셨습니다. 총공회장의 교권을 없애기 위해 총공회장은 총공회 회의가 끝나면 없어지는 ‘비상존기관’이라 하셨고, ‘총공회 교단’이 조직으로 운영되면 그것도 결국 교권이 될 것이라며 총공회 교단에는 아무 권력도 없고 개교회가 모든 걸 결정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목사의 교회 독점도 없애기 위해 시무투표를 2년마다 조건 없는 투표를 하도록 하셨고, 백영희목회연구소도 결국은 누가 독점하게 되면 교훈이 막힌다면서 신풍연구소도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서부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7. 저희 총공회, 특히 서부교회 교인이라면 누구나 백영희 목사님의 교리 신조뿐 아니라 행정까지도 세계 최고라고 배웁니다. 저희 행정이 최고인 것은 이처럼 교훈전파를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도록 조치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성경의 사무엘 선지자를 비유하시며, ‘어린아이라도 하나님이 이 설교를 전파하라고 하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훈을 전파할 때 인간에 의해 가로 막힌다면 그건 교회가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교훈에 힘입어 저는 백목사님의 설교와 설교록을 전파 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신대학교 선교대학원 주최 개혁주의신앙 강의차 오신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설교를 듣고 이분이 우리 공회의 교리와 신조가 목회에 도움이 되겠다 생각하여 후에 “총공회 역사” “조직신학” “설교파일”을 보내드린 적이 있었고, 영문으로 번역된 백목사님 설교를 신풍연구소에서 주문하였는데 그후 그의 전기를 읽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에게도 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백영희 신앙연구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1998년 무렵에는 이 사이트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사이트 전도명함을 만들어 노방전도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부산 영락교회에 다니시는 부산 독일 영사인 000 권사님께도 설교록을 전달 하였고 백 목사님 설교파일도 전했습니다. 주변의 동료들 혹은 지금도 지인들에게 백 목사님의 설교를 휴대폰으로도 전하고 있습니다.

8. 백 목사님은 교회의 정의를 똑똑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회란 하나님과 진리(성경과 설교)와 성도가 하나된 것이 교회’입니다. ‘백 목사님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성도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 목사님의 설교는 총공회 성도들의 것’입니다. ‘총공회 성도들은 얼마든지 백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이용하고 연구하고 전해야’ 합니다.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 성도라면 그들도 자유로이 설교를 이용하고 연구하고 전해야 합니다.
백 목사님께서 생전에 기도 제목 15가지를 만들어 전 공회교인에게 기도를 하도록 하셨고 전 공회교인은 거의 매일 이 15가지 기도제목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기도제목 2호가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종에게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사 믿음으로만 충성하게 하시고 영육강건하게 하시고 범사에 주님이 동행 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서부교회 교인들뿐만 아니라 총공회 성도들은 백 목사님 생전에도 이 기도를 매일하고 있었고 기도록에 등록하여 도장을 찍고 있었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백 목사님께서 혼자 독서하고 연구하고 집필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설교는 수많은 총공회 소속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분 자신도 항상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분은 초등학교 5학년을 겨우 마친 분입니다. 성도들의 간구와 기도가 아니면 그런 영감의 설교 가 나올 수 없는 것이 교회 공동체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저도 지금도 매일 15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 설교 재산권 주장을 하는 것은 그들은 참 된 성도가 아니요 총공회 공동체의 소속도 아닙니다. 00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슨 낮으로 서려고 그러는지 염려가 됩니다.

9. 백 목사님 생전 1989년에 전국에 총공회 성도가 10만이 넘었습니다. 서부교회는 주일학교 학생과 중간반 장년반 성도가 3만 명을 넘었습니다. 서부교회와 총공회에 교인들이 피땀 흘려 벌인 돈이 헌금으로 바쳐져서 수많은 교역자와 교인들이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백 목사님의 교훈을 연구하는 편집실, 목회연구소, 양성원, 집회장소,기도실 등을 만들어 총공회의 엄청난 부흥이 있었던 것입니다. 총공회 모든 성도들과 서부교회 성도들은 백목사와 그 자녀들을 위하여 헌금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바쳐서 하나님의 종들이 하늘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바친 것 입니다. 공교회의 공적 재산을 개인의 소유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백 목사님도 설교말씀 가운데 ‘교역자가 발령이 나서 목회지를 떠나면 그릇 하나라도 가지고 가지마라. 빈손 놓고 가서 거기서 또 준비하고 살아라. 이전에 살던 물건을 들고 가면 도둑놈이다’ 말씀 했습니다. 또 그분은 ‘내 재산은 송곳 끝만한 땅도 없고 은행계좌에 내 이름으로는 한푼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부교회 주변 사람들에게도 ‘누구든지 서부교회 오면 서부교회 재산은 서부교인들 것입니다.’라고 백 목사님이 직접 서부교회 동네 분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도로서 발설해서는 안 되는 말인 줄 알지만 설교재산권 주장을 하니 제가 말합니다. 저는 서부교회 37년간 재직 하면서 기억나는 헌금 큰돈을 3번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땀 흘려 벌인 돈입니다. 선교개척헌금 1,000만원, 감사헌금 1,000만원, 토지매매십일조헌금 2,500만원 3회에 걸쳐 4,500만원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헌금 외에 37년간 헌금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목사와 그의 가족과 교회를 위해 헌금을 바친다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서 이 땅에 하늘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기를 소원하며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의 자녀들이 공교회의 공공성을 모르고 목사님의 설교를 설교재산권으로 등록하려고 법정에 고소를 하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입니다. 이 사실을 모든 공회 성도들이 안다면 저 뿐만 아니라 공회성도 모두가 백 목사님의 자녀들에게 재산청구권을 행사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지가 돌아 가셨으면 가족들은 당연히 백 목사님 재직동안 교회를 통해서 의식주를 해결하였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자녀들 모두가 좋은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누리며 살고 있었으니 교회에서 맡긴 직책은 잘 감당하고 욕심 없이 사는 것이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성도의 자세인 것 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은 아버지의 명성에 00을 하고 교회분쟁과 교회재산을 0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89년 백 목사님 사후 가족들의 행태와 교인들의 0한 행동을 보고 불신자보다 더 0한 교인들이 이 교회에 가득하구나 하는 사실에 탄식한 적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 자녀들은 백 목사님이 고신교단에서 제명당할 때 백 목사님께서 머리를 삭발을 하고 다시는 고신에는 옳은 말 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고 할 때 삭발하신 목사님을 보고 울고불고 난리를 한 사람들입니다. 제명당한 이유가 ‘교회가 나라의 법정에 가서 시시비비를 하느냐’ ‘하나님이 신앙양심으로 우리에게 옳고 바른 것을 다 가르쳐 주셨는데 양심을 어기고 법정에다 고소고발하는 것은 죄이다’라고 외치다가 제명당한 일을 똑똑히 알고도 그들이 또 이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단연코 말합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는 총공회 성도 모두의 것입니다. 총공회 성도들은 누구든지 백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읽고 연구하고 전파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설교재산권으로 독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0. 피고 이영인 목사는 백 목사님이 생전에 백 목사님 설교 연구와 교단의 교리를 전하기 위해 미국에 유학을 보내셨습니다. 연구소의 연구부장이면서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장이었는데 이 자리는 서부교회와 총공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입니다. 이런 인물을 백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신풍으로 보냈고 그 때부터 연구소는 부산과 신풍으로 이원화가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 생전부터, 서부교회와 총공회에 모든 설교록 출간과 연구물들은 거의 전부 이영인 목사님 손에서 나왔습니다. 1989년 1월에 백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서부교회 최후의 사경회를 개최했고 강사는 이영인 목사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강의가 서부교회와 총공회를 정리한 연구 발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 내용 그대로 걸어가기 때문에 서부교회와 총공회에서는 백영희 목사님이 생전부터 그 설교와 연구는 이영인 목사에게 평생 사명으로 맡긴 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백 목사님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고 목회 현장에서 그대로 실천 해나가는 분입니다. 또 백 목사님의 설교록 전체를 체계화 시키고 연구 하면서 많은 서적을 통해 한국교계와 세계교계에 백 목사님의 세계 최고의 교리 신조 행정을 힘 있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귀 법원이 기회를 주신다면 직접 증언대에 나가서 상기 내용은 물론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사실들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2017. 10. 27.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서부교회 집사 이동훈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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